주변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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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경 남해 금산과 보리암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리는 삼남 제일의 명산. 금산(681m)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러왔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뜻으로 금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으며, 불타오르는 여명이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은 3년동안 덕을 쌓아 볼수 있다하며 그 장엄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 금산 38경
1. 망대 2. 문장암 3. 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조선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 14.용굴 15.쌍홍문 16.사선대 17. 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 23.촉대봉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27.상사암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 31.화엄봉 32.일월봉 33.요암 34.부소암 35.남해양아리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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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경 남해대교와 남해 충렬사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 큰섬. 창선·삼천포대교 개통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던 남해대교이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80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 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이었으며,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탔던 한맺힌 곳이었다.
남해대교가 놓여지기 전, 남해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남해대교 개통 이후부터는 승용차로 1~2분이면 거뜬히 물을 건넜습니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한 남해대교를 건너면 벚꽃터널이 반긴다.
봄이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벚꽃의 터널이 장관이다. 벚꽃터널을 지나 노량마을로 내려오면 충무공 이순신이 관음포에서 전사한 후 시신을 잠시 모셨던 충렬사와 바로 앞 바다에 떠 있는 실물 크기의 거북선이 있다. 남해충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 장군이 3개월간 묻혔던 자리에 아직도 가묘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1598년 11월 19일 돌아가신 충무공의 유해는 충렬사 자리에 안치되어 있다가 1599년 2월 11일 전라땅 고금도를 거쳐 외가동네인 아산 현충사 자리에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충렬사의 역사는 장군이 돌아가신지 34년이 지난 1633년에 한칸의 초사를 건립하여 제사를 봉행하면서 시작된다.
남해충렬사는 규모가 통영충렬사 등에 비하면 매우 작지만 1973년 6월 11일, 사적 23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쓴 이충무공묘비와 사우 그리고 충무공비와 충민공비, 내삼문, 외삼문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청해루와 장군의 가묘가 잘 정리되어 있다.
※ 남해대교 경관조명 점등 시간 : - 하절기 20:00~23:00 - 동절기 18: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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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경 상주은모래비치
상주은모래비치는 은빛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넓은 백사장,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과 더불어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청정 바다로 이루어진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간직한 해수욕장이다. 경관뿐만 아니라 전국 3대 기도도량 중 하나인 보리암이 자리한 명산 금산을 단 하루 코스로 다녀올 수 있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100만에 가까운 관광객이 찾는다는 상주은모래비치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국에서 이름난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현재는 겨울철 남해를 찾는 전지훈련 팀들의 사랑을 받는 최적의 훈련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 뛰어난 경관으로 학생들의 수련장,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로 발길이 끊이지 않아 남해의 대표 4계절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2㎞에 이르는 반월형 백사장의 모래는 고운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부드러워 마치 비단 위를 걷는 착각이 들게 만듭니다. 잔잔한 물결, 비단결 백사장과 하모니를 이루는 송림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상쾌한 바람을 선사하는 휴식의 공간이다. 바다는 기복이 없고 완만한 리아스식 경사를 이뤄 수심이 얕기 때문에 어린이 물놀이에도 안성맞춤이며, 가까운 곳에 강물이나 다른 바다공해에 오염될 것도 없어 바다 밑바닥 모래알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물이 맑고 깨끗하다.
백사장은 160,000㎡이고, 송림면적은 8,926㎡, 해수욕이 아니라도 송림에서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힐 수 있다. 바다수온은 23℃∼25℃, 수심은 0.5m∼4m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관광지이다. 해변에서 마주 보이는 나무섬과 돌섬이 남해 먼 바다의 거센 파도를 달래듯 해안을 막고 서 있는데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상주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면 이곳에서 숙박을 한 뒤, 새벽에 금산에 올라 일출의 장관을 보고, 금산 38경을 두루두루 돌아본 뒤, 시원한 상주 은모래비치의 깨끗한 바닷물에서 해수욕을 즐기거나 해변을 산책하면 최상의 여행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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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경 창선교와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
지족해협에 건설된 창선교는 창선면 지족마을과 삼동면 지족마을을 잇는 길이 440m의 콘크리트 사장교로 95년 12월20일 개통되었다. 아마 지난 93년 성수대교가 붕괴되기 며칠전에 창선교가 붕괴되어 남해군민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사건 중에 하나이기도하다. 창선교 아래를 흐르는 지족해협은 26통의 원시어업 죽방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좁은(손) 바다길이라 하여 "손도" 라 불리는 지족해협에 V자 모양의 대나무 정치망인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개를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방향으로 벌려 놓은 원시어장이다.
지족해협은 물이 맑고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은 담백하고 쫄깃하기 이를데 없다. 물이 흐르는 때를 보아 하루 두차례 뜰채로 생선을 퍼내는 모습을 보면 자연산 싱싱한 회 생각에 절로 군침이 돈다. 특히 멸치, 개불, 미역은 지족해협 최고의 특산물이다.
남해섬에 딸린 또 하나의 섬, 창선도와 이어진 440m의 창선교는 1992년 한차례 붕괴되어 1995년 12월에 다시 개통되었다. 다리 위에서 낚시대를 드리워도 한 가족 먹을 좋은 횟감은 얻을 수 있는 지족해협은 죽방렴과 바다, 갈매기와 백로가 어우러진 진풍경을 자랑한다. 특히 이들과 함께하는 일몰광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원시어업 죽방렴은 가천마을의 암수바위와 함께 남해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치있는 문화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 창선교 경관조명 점등 시간 : - 하절기 20:00~23:00 - 동절기 18: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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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경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대교에서 섬의 한가운데를 향해 4Km 들어오면 사적 사적 제232호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일명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이락사 앞 뜰에는 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유언비가 역사를 증명하듯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 있다. 이락사가 순국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철 푸른 육송이 404년 전의 그 날을 되살려내고 있다.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 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소나무에도 투영된 것일까?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바로 ‘대성운해’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大星隕海’라.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 뜻이다.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른다. 길의 좌우에는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정취를 더 한다. 첨망대에서 바라보면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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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경 남해 가천 암수바위와 남면해안
암수바위,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남면 가천마을은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을 한 남해섬의 회음부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킬 신성한 곳인 셈이다.
일명 삿갓논,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다랭이 논은 남해인의 근면성을 보여주듯 층층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더 있더라는데서 유래된 삿갓논은 짜투리 땅도 소중히 활용한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을 대변하고 있다. 다랭이 논의 의미를 되새기며 바라보는 가천마을의 풍경은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가천마을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암수바위. 높이 5.9m의 수바위와 4.9m의 암바위로 이뤄진 암수바위는 발기한 남자의 성기와 애기를 밴 어머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있다.
조선 영조27년 이 고을의 현령 꿈에 한 노인이 "가천에 묻혀있는 나를 일으켜 달라"고 부탁해 땅을 파보니 암수바위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 바위를 발견한 뒤로 매년 제사를 지내도록 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바라는 제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다랭이 마을 뒤쪽에 있는 설흘산(482m)은 망산과 인접해 있다. 설흘산에서 내려다 보면 깊숙하게 들어온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늑하게 보인다. 설흘산 정상부근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원래 봉수대는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정한다.
설흘산 역시 한려수도와 앵강만, 망망한 남쪽 대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일출의 장관이 유명하다. 남면 홍현의 무지개마을에서 오르면 가장 가깝지만 가천마을에서 북쪽으로 곧바로 오르거나 멀리 임포에서 시작하면 칼바위 등을 지나는 등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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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경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
노도, 섬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 못지 않게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벽련(碧蓮). 말 그대로 짙고 푸른 연꽃, 3천년만에 핀다는 우담바라의 마을 바로 앞 삿갓처럼 생긴 섬이 바로 노도이다.
서포가 생을 마감한 지 300여년이 지난 지금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문신으로서, 효자로서, 소설가로서, 한글애호가로서, 시인으로서, 한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그 고뇌스런 일생과 함께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문학의 산실이다.
남해는 서포 김만중 외에도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렵지만 벽련마을 안에서 어선을 이용하면 쉽게 섬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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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경 송정솔바람해변
상주은모래비치에서 동쪽으로 4km, 미조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송정솔바람해변은 특색 있는 남국의 정취를 간직한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상주은모래비치와 더불어 맑은 바닷물과 송림, 부드러운 백사장으로 이뤄진 수려한 자연경관을 담고 있고 탁 트인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찾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백사장은 길이 1.5㎞, 폭 90m, 면적 약 50,000㎡ 이르며 수온은 연평균 18℃로 해수욕을 즐기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송정의 또 다른 매력은 해수욕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몽돌과 기암괴석이 뒤섞인 단애의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송정까지 왔다면 아름다운 항구 미조항에 들러 싱싱한 회를 맛보고, 어민들의 생활상도 느껴보세요. 또 물미해안도로(물건-미조)를 따라 남해의 아름다운 정취에 취해보거나 남해의 대표적인 관광지 독일마을과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창선교,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전통멸치잡이) 등을 둘러보는 것도 남해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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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경 망운산과 화방사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사에 몸과 마음이 지쳐 그냥 편안히 쉬고 싶은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에게 산사(山寺)는 삶의 고향이고 위안이기 때문이다. 여초 김응현 선생의 일필휘지가 오직 한마음, 일심으로 정진하라는 일주문을 가로지르고 있는 망운산 화방사는 채진루의 이름이 그렇듯이 삶의 진실을 캐는 이들의 땅이다.
1981년 화재로 소실된 이충무공 목판 묘비가 복원되어 있는 화방사는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 때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호국사찰이다. 법전사물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화방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인 산닥나무 자생지가 있어 교육의 장이 되었다.
화방사에서 망운사로 오르는 아침 숲길 등반은 산사체험을 곁들인 멋진 산책 코스로도 유명합니다. 정상 가까이에 있는 조그만 암자였던 망운사는 성각 스님의 20년에 걸친 중창불사로 망운암에서 독립사찰 망운사가 되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세운 듯한 돌 일주문을 무심으로 지나면 중병을 낫게 한다는 영험의 기도도량 망운사가 나온다.
남해바다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망운산(786m). 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이곳이 알려지길 두려워한다고 한다. 화방사의 정적을 뒤로 하고 산길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점점이 떠있는 작은 섬들과 강진만, 청정해역의 서상 앞바다, 지리산, 여천공단, 여수, 사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낸 흔적이 남아있으며 옆에는 제관이 앉을 수 있도록 돌로 된 의자가 놓여있다. 남해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먼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상주 앞바다의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 반대편 연대봉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5월에는 철쭉군락지의 꽃들이 만개해 붉게 타오르는 화려한 면모를 선보이며, 등산객을 현혹한다. 최근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어 전국 동호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화방사에 차를 세우고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으며, 망운사와 정상까지 갈 수 있는 임도가 있어 차를 타고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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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경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과 물미해안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어부림으로 길이 1.5km, 너비 30m의 반달형으로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인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300년 된 40여종류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마을 뒤편에는 50년대 광부와 간호사로 머나먼 이국땅 독일로 건너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조국근대화의 가장 큰 주역이었던 우리 동포들에게 고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정착할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는 독일마을이 위치해 있는데 건축방식에서부터 생활여건이 독일식으로 꾸며져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접할수 있다.
그리고 물미해안도로는 물건과 미조를 잇는 해안도로를 부르는 이름이다. 미조항에서 싱싱한 회 한접시를 먹고 출발해 꾸불꾸불한 해안도로의 경치를 만끽하면 "이런 곳이 있었구나"하는 신선한 충격을 느낄 것이다.
초전-항도-가인포-노구-대지포-은점-물건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지나는 마을마다 빼어난 경치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내항도, 외항도의 쌍둥이 섬을 가진 항도마을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사량도, 두미도, 욕지도는 물론 가까이에 마안도, 콩섬, 팥섬 등 남해바다의 온갖 섬들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짐을 더한다"는 포구, 가인포는 중국사람이 지나가다 밥 한 상을 대접받고 지어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노구에서 대지포까지는 아홉 등 아홉 구비로 일컬어지는 수많은 고개가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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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경 호구산과 용문사
용문사는 미륵이 탄생하여 맨처음 몸을 씻었다는 용소마을 위쪽의 호구산 계곡에 호젓하게 자리잡고 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를 짓고,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옮겼다고 한다.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로 불리는 용문사의 독특함은 천왕각의 사천왕이 짓밟고 있는 양반과 탐관오리였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는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직 민초들의 곁에 있고자 했던 용문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절이다.
보물로 지정된 수많은 용조각이 새겨진 대웅전, 용화전에 모셔진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용문사석불, 조선 인조 때의 시인 초은 유희경 선생의 촌은집책판 52권을 비롯하여 문화재자료 천왕각, 명부전이 있다.
또한 문화재로는 지정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총구가 세 개인 삼혈포와 용문사가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숙종이 하사한 수국사금패, 궁중매듭 번 등이 용문사가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용문사의 산내 암자로 백련암과 염불암이 있다.
특히 백련암은 수행처로 이름나,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용성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 성철스님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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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경 창선-삼천포대교
총연장 3.4km에 이르는 5개의 창선·삼천포대교. 세계에서 보기드문 다리의 향연 !!
지난 2003년 4월 28일 성웅 이충무공의 탄신일을 기하여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된지 30년만에 창선·삼천포대교를 개통하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물로 탄생한 창선·삼천포대교. 길이 3.4km의 창선·삼천포대교는 삼천포와 창선도 사이 3개의 섬을 연결하는 5개의 교량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해상국도(국도3호)로 남아있는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관광명소이다.
남해의 새로운 관문으로 탄생한 이 다리는 창선도의 육상교량으로 150m길이의 PC빔교인 단항교, 창선과 사천 늑도를 잇는 340m의 하로식아치교인 창선대교, 사천시의 늑도와 초량을 잇는 340m 길이의 PC BOX인 늑도대교, 초양섬과 모개섬을 잇는 202m의 종로식 아치교인 초양대교, 모개섬과 사천시를 연결하는 436m의 콘크리트 사장교인 삼천포대교라는 다섯개의 교량이 다리박물관을 방불케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1995년 2월 착공하여 2003년 4월 개통된 창선·삼천포대교는 전체공사비가 1,830여억원으로 한국 최초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교량 자체가 국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남해군 또한 주변 개발을 통해 명실상부한 한려수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 창선-삼천포대교 경관조명 점등 시간 : 일몰시 ~ 23:00
출처 - 남해문화관광 (http://tour.namha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