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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명산 | 남해 금산] 이성계 전설 간직한 최고 기도처 보리암

관리자 | 2018.06.24 09:52 | 조회 245


글 월간산 박정원 편집장       사진 C영상미디어, 남해군청

입력 : 2018.06.18 12:00 [584호] 2018.06


                              
            

경관 뛰어나 38경이나… 불로초 구하러 온 서복이 남긴 기록도 전해

    

남해 금산 하면 한국 최고의 기도처 보리암을 떠올린다. 정성들여 기도 올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진다고 한다. 금산보다 더 유명하다.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낙가산 보문암, 여수 향일암과 더불어 한국 4대 기도처다. 실제 조선시대 이래로 가장 영험한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부 이성계 영향이다.

이성계는 조선 개국을 앞두고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누비며 산신기도를 올렸다. 어느 산에도 감응이 없었다. 가장 영험하다는 지리산 산신마저 “아직 그럴 만한 인물이 못 된다”고 돌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낙담한 이성계는 지리산에서 아래쪽을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서광이 비쳤다. 그곳은 남해였다. 당시는 보광산. 이성계는 삼불암이 보이는 절벽 아래 자리를 잡고 마지막 기대를 걸고 산신에게 백일기도를 올렸다. 그 자리가 보리암 동쪽 삼불암 아래 ‘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이라고 전한다. 남해 산신은 이성계가 마침내 왕이 될 운명이라는 사실을 꿈으로 알렸다.

[6월의 명산 | 남해 금산]
금산 보리암 해수관음보살상에는 연중 기도객이 끊이질 않는다. 맑은 하늘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6월의 명산 | 남해 금산]
남해 금산 보리암 전경. / 사진 신특수

[6월의 명산 | 남해 금산]
남해 상주 해수욕장이 아름답게 펼쳐진 뒤로 금산이 마치 병풍 같이 늘어서 있다. / 사진 신특수

[6월의 명산 | 남해 금산]
남해 금산은 녹음이 더욱 짙어만 가고, 앞바다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넘실거리는 듯하다.

이성계는 보광산 산신에게 보은을 하기 위해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쌀 것을 약속하고, 그 이름을 보광산에서 금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산’이란 의미다.

남해란 지명은 신라 신문왕 때부터 등장하지만 조선 이전까지 보광산이든 금산이든 역사서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산신제를 지내던 전국 40여 명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조선시대부터 금산이란 지명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유배지로서 더 알려진 곳이 남해다. 남해는 당시 거제, 제주와 함께 조선의 3대 유배지였다. 육지에서 섬으로 유배 온 많은 선비들은 육지와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달리 할 일도 없어, 학문이나 유람으로 시간을 지낼 수밖에 없었다. 남해의 유배문학이 나름 유명한 이유다.

뛰어난 경관으로 인해 보통 8경이나 10경을 말하지만 금산은 무려 38경이 있다. 매년 1월 1일이면 일출을 보기 위한 인파로 산 아래부터 인산인해다. 정상에 가면 봉수대와 더불어 ‘유홍문由虹門 상금산上錦山’이란 석각이 있다. 홍문으로 해서 금산에 오른다는 의미다. 이를 ‘문장암’ 혹은 ‘명필 바위’, ‘상제암上帝岩’이라고도 부른다. 문장암 위에 있는 바위를 목혜바위, 일명 나막신 바위라고 한다. 영락없는 나막신 같이 생겼다.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이 바위는 고대부터 개인 치성터로 사용된 듯하다”고 말한다.

산자락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보낸 서복이 남긴 글자라고 전하는 석각이 있는데 아직 해독불가라고 한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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